[현장에서] 디지털 보험사에 필요한 건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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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디지털 보험사에 필요한 건 아날로그
  • 김환범 보험설계사 kgn@kongje.or.kr
  • 승인 2024.06.07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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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의 시대

언제부턴가 디지털은 보험업계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더욱 빠르고 보다 간편하게. 디지털은 보험사들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더 많은 수익과 고객 편의를 도모할 기회처럼 여겨졌다. 많은 보험사가 앞다퉈 디지털 혁신을 외쳤다.

이에 따라 디지털 보험사들이 주목받았다. 마치 포화된 보험시장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할 것처럼 보였다. 디지털은 보험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간소화해 편의성을 제고하고, 부대비용을 절감하면서 고객과 보험사 모두의 편익을 높일 수 있는 요소였다.

현실의 벽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디지털 보험사들은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적자는 계속됐고 이젠 장기보험을 준비하고 있다. 간편함만으론 넘기 힘든 어떤 한계가 자명했다.

처음 디지털 보험사들이 등장할 때, 보험설계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개선돼야 할 문제점처럼 여겨졌다. 중간 과정이 늘어 업무 처리가 지연되고 수수료가 발생해 비용도 증가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물론 디지털은 편리하다. 다만 보험업에 전면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보험업의 본질을 떠올려보면 쉽다. 위험에 대한 보장. 위험은 0과 1의 명확한 숫자로 표기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고객의 불안도,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솔루션의 제시도 마찬가지다.

아마 디지털이 지금보다 정교해진다면 의무보험이나 기업보험에서의 활용도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에, 보장 대상이 정형화된 물건이라면 방대한 데이터를 실수 없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보험은 다르다. 가입이 의무가 아니고 리스크를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개인의 의료, 건강 데이터를 얼마나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는 기술의 범주지만, 이를 보험사에 어디까지 제공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다. 개개인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염려하는지도 디지털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름의 인정

혹자는 아직 보험업에 접목하기엔 디지털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영업적 측면에서) 보장구조가 단순한 상품만 판매할 수 있어서라 말하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공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간단한 보험들은 지금 모두 온라인(CM)이 대체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표적으로 자동차보험을 들 수 있다. 일부 특약이 아니라면 어느 회사나 보장이 같고 1년마다 새로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다. 보험사들의 다이렉트채널로 가입한다면, 보험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것보다 보험료도 저렴하다. 그래서 자동차보험은 CM이 빠르게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자동차보험 계약은 보험설계사 등 대면채널(2023년 기준 44.5%)에서 이뤄진다. CM은 38.2%, 전화(TM)는 17.2%다. 디지털과 차별되는 아날로그만의 강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생각의 전환

관점을 비틀어볼 필요도 있다. 디지털은 항상, 누구에게나 간편한 것일까? 자동차보험에서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나 사고 이력 등으로 가입이 어려운 이들에겐 오히려 물어볼 방법도 마땅치 않은 CM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도저히 시간이 없어 보험설계사에게 맡기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기술이, 누구에게나 같은 효용을 갖진 않는다. 모바일 앱으로 거의 모든 용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도 은행 창구를 찾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9 to 6의 점포도, 응대할 직원도 필요하다.

디지털이 가야할 길

그럼 디지털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손이 필요하거나 사람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인 곳에서, 사람(소비자든, 보험사든)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쪽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력을 대체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건 다음이다. 그게 우선일 순 없다.

보험은 인지산업이라 했다. 사람과 종이로 하는 산업. 디지털이 대체해야 할 것은 종이다. 사람이 하던 것 중 디지털이 더 유용한 부분과 함께. 단순 반복작업이나 복잡하지 않고 정형화된 내용의 설명 같은 것들 말이다.

본질적인 보험에서 인(人)은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기술이 더욱 발전할 미래에도 그럴 거다. 보험에 대한 니즈는 숫자로 정량화되지 않고, 간단명료한 설명으로 키울 수도 없다.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날로그가 필요한 이유다.

디지털은 좋고, 아날로그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이 효율적인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날로그가 유용한 부분도 있다. 보험은 단순하지 않다. 상호보완으로 최적의 시너지를 내야 한다. [한국공제보험신문=김환범 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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